2020년 7월부터 지금까지, 너무나도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모르는 일, 힘든 일 투성이었던 대응 과정이 여지껏 유지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공감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옆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록합니다. 우리가 느꼈던 감정, 힘들었던 일, 먼저 비슷한 길을 걸어본 사람으로서 해주고 싶은 말 등을 진솔하게 담았습니다. 우리의 솔직한 기록들이 또다른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 기록 - 그럼에도, 우리가 계속 외치는 이유
이 사건에 대해 처음 전해들었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친구와 함께 PC방에서 게임을 하던 도중 다른 한 친구가 SNS를 통해 불법 촬영으로 연행되는 한 교사의 사진을 보내주었습니다. 얼굴은 모자이크로 가려져 있었지만, 저는 한 눈에 그 교사(이하 A교사)가 누군지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순간 머리를 강하게 한 대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1학년 때 저희 체육 수업을 담당했던 그 교사는 인상도 좋고 학생들도 잘 챙겨줘서 졸업 후에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A교사와 함께 보냈던 시간과 나눴던 대화들이 마음 속 한 켠에 큰 상처를 냈습니다. 교사가 학생을 상대로 불법 촬영을 했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습니다. 학교생활을 하며 수없이 마주치고, 수업을 가르치던 A교사의 얼굴이, A교사가 우릴 보며 웃던 얼굴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에 나는데. 뒤에서는 그런 파렴치한 짓을 했으면서 앞에서는 학생들에게 좋은 교사인 척을 했다는 것이 역겨웠습니다. 더하여 이건 교사와 학생 간의 신뢰에도 금이 갈 수 있는 크나큰 문제였습니다. 친구들 얼굴이 생각났습니다. 이윽고 뭐라도 나서서 해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습니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서 사건이 해결되기만 하염없이 기다리기에는 답답했습니다.
다행히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저 혼자만이 아니었습니다. 심각성을 느낀 졸업생과 재학생들이 벌써 뭉쳐서 하나의 모임을 만들어가고 있었으니까요. 누구 한 명이 주도적으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나서서 일의 우선순위를 제시해 나갔습니다. 처음 겪는 기자회견, 인스타 페이지, 소통 창구 등 이 모든 것이 단 몇 주 만에 이루어졌습니다. “우리와 같은 피해자들이 또다시 생겨나선 안된다.”라는 생각 아래 모두가 한 마음으로 움직였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뿌듯한 마음보다는, 애초에 이런 일을 하게 만든 그 교사에 대한 분노가 더욱 컸습니다. 그 한 사람으로 인해 도대체 몇 명이 고통 받아야 하는 걸까? 는 생각만이 머리를 맴돌았습니다. 그 사람의 행동 하나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분노도 점점 옅어졌어요. 그 때가 첫 번째로 힘들었던 순간인 것 같습니다. 가장 극명하게 와 닿는 수치는 탄원서 연서명 인원이었습니다. 1차 탄원서 때는 1,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연서명을 했었는데, 2차 때는 500명, 3차 때는 300명 정도로 연서명 인원이 뚝뚝 줄었어요.
사람들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나 스스로도 점점 힘이 빠지고, 예전처럼 분노로 가득 차 열정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는 것이 느껴졌으니까요. 그 때는 분노할 힘을 잃어버린 나 자신이 밉고, 이기적이고 못된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건 이기적이거나 못된 게 아니라 더 큰 목적으로 넘어가는 변곡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단순히 개인적인 분노를 넘어, 다른 사람들에게는, 적어도 학교에서만큼은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 하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하는 고민의 시작이 가능했던 때가 그 때였던 것 같아요.
저희의 마음에 깊이 새겨진 상처는 평생 안고 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이야기를 외치는 것으로는 이 사건이 없었던 것처럼 깨끗하게 지워질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 끔찍한 기억을 수 차례 다시 끄집어 내가며 아직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그리고 설령 발생했다 하더라도 대처 과정에서 조금이나마 덜 방황하여 더 큰 상처를 입는 학교의 구성원들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