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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기록 - 불법촬영 사건 속, 각자가 지나온 시간들 (2)

2020년 7월부터 지금까지, 너무나도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모르는 일, 힘든 일 투성이었던 대응 과정이 여지껏 유지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공감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옆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록합니다. 우리가 느꼈던 감정, 힘들었던 일, 먼저 비슷한 길을 걸어본 사람으로서 해주고 싶은 말 등을 진솔하게 담았습니다. 우리의 솔직한 기록들이 또다른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 기록 - 우리가 원하는 건 단순 처벌이 아닌 앞으로의 대책입니다.

작년 7월, 있어서는 안 되지만 어딘가에서는 분명 일어나고 있을 너무나 불쾌한 현실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기사는 많이 봤지만 이런 일의 피해자가 본인이 될 거라고 저 역시도 한 번도 못 했었고, 그리고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 하고 있겠지요.
처음 알게 된 건 같은 학교를 졸업한 선배의 SNS였습니다. 불과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모든 추억들이 아직 생생한 모교의 한 교사가, 우리와 3년을 낮에는 체육 교사로 우리와 스포츠를 하며 가깝게 지내고, 밤에는 기숙사 사감을 하며 우리의 안전한 잠자리를 지켜주는 줄로만 알았던 그 교사(이하 A교사)가 미성년자였던 우리를 상대로 오랜 시간 불법 촬영을 해왔다는 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살면서 감히 느낄 수조차 없었던 처음 겪는 분노가 치밀어 올라왔습니다.
당장 이 사실을 관련되어 있는 모두에게 알려야한다고 생각했고, 그 소식을 같이 학교를 다녔던 친구들에게 바로 전해주었습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단합력이 좋았고 우리의 행동과 판단은 빨랐습니다. 소식을 접하자마자 이 사건의 대책을 세우기 위해 A교사가 근무했던 기간에 학교를 다녔던 관련 졸업생들 중 각 학년 별 대표자들에게 빠르게 연락해 순식간에 단톡방이 만들어졌고, 바로 대책을 위한 회의가 이루어졌습니다. 바쁜 와중에도 이 회의는 소홀히 진행된 적이 없고, 시간이 지나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잊혀져 갈 때도 졸업생분들께서 피눈물 흘리며 지속적으로 회의록을 단톡방에 올려 사람들에게 알리며 마지막 끈을 놓지 않고 노력했습니다.
사실 맨 처음에는 우리가 이렇게 목소리를 낸다고 씨알이나 먹히겠나, 이런 사건이 한 두 개도 아닌데 누가 제대로 들어줄까 하는 걱정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생각과 다르게 우리 사회에는 어린 학생들을 진심으로 생각해주고 걱정해주시는 참된 성인들이 많았습니다. 더욱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인스타 페이지도 만들고, 두 발 벗고 교육청 앞에 가서 기자회견을 통해 세상에 공식적으로 우리의 입장을 알리기도 했습니다. 이런 우리의 목소리를 많은 분들께서 들어주셔서 우리의 첫 번째 탄원서에는 1300명이 넘게 연서명에 동참해주셨습니다.
함께 분노해주시는 분들이 늘어날수록 A교사에 대한 분노도 뚜렷해졌습니다. 단순히 내가 피해자여서가 아니라, 성인들에게 일어나도 파렴치한 일이 어린 미성년자를 상대로 했다는 사실에 정말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연서명 인원을 보며 힘을 얻었는데 두 번째 연서명부터 급격히 줄어드는 인원은 어느새 나도 모르게 관심이 줄어든 사람들 중 한 명으로 만들어가는 듯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모두가 포기하겠구나 했거든요. 하지만 우리는 줄어든 관심의 인원을 채우기 위해 더욱 발악했습니다. 저조한 여서명 동참 인원 앞에 좌절하고, 시간이 갈수록 우리조차 지쳐가는 모습을 피부로 느끼며 겪었던 그런 힘든 과정들이 우리를 한 단계 더 참된 성인으로 만들어 준 것 같습니다.
살아가면서 누구는 겪지 않는다고 결코 말 할 수 없는 일이고, 꼭 누가 겪는다고도 말 할 수 없는 사건입니다. 이렇게 피해자였던 우리가 또 다시 이런 일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까지 사건을 공론화하며 애썼던 이유는 단순히 우리가 피해자여서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 당시 ‘미성년자 고등학생’에 불과했고, 그 어린 학생들이 그런 일을 당했다고 생각하니 우리 사회의 모든 미성년자가 언제든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기에 A교사가 아무리 강력한 처벌을 받는다 해도 우리가 당한 일이 없어질 수 없고, 용서를 빌어도 우리는 믿었던 교사에 대한 배신감, 그런 일을 당했다는 모욕감을 평생 안고 가야할 것입니다.
그냥 ‘저 교사 강력하게 처벌해주세요’ 가 아닌 ‘앞으로 그 어느 곳에서도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없도록 해주세요.’가 우리 목소리의 핵심이라는 것을 모두에게 알려 더 이상의 피해자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다음 차례는 여러분께서 각종 대응 과정에서 참고하실 수 있도록 마련된 대응모임에서 만들거나 사용한 자료들로 이어집니다.